지난 2015년 4월 18일 세월호 1주년 추모 집회 현장에서 한 사람이 태극기를 태운 일로 온 나라가 아주 난리 법석이다. 태극기를 태운 행위에 대해 일부 보수 단체들은 엄벌을 요구하고 나섰고, 경찰도 국기모독죄를 적용해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1]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를 태운 것은 이유야 어쨌던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언론 보도나 분위기를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태극기를 태운 이유에 집중해야할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태극기를 태운 행위에만 집중하여 잘했다 잘못했다 따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세월호 사건과 그 희생자 가족에 대해 거짓과 무시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헌법 제7조 ①항),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 ①, ②항)는 헌법 조항을 무시하는 공권력의 모습, 이런 정부와 공권력에 부화뇌동하는 주류 언론들의 보도 행태는 우리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조차 의심케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1주년 추모 집회에 참가하여 태극기를 태운 그 사람은 "무자비한 공권력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해 순국선열이 피로써 지킨 태극기를 공권력 남용하는 그들은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으며,[2] 굳이 이런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지난 1년간 세월호 사건의 처리 과정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날 집회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추측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일부 사람들은 태극기를 국가와 동일시하고 태극기를 태우면 큰일이라도 벌어지는듯 호들갑을 떤다. 대한민국 정부나, 대한민국 경찰이 곧 대한민국은 아니듯 태극기가 곧 대한민국은 아니다. 순국선열이 지키고자 했던 것도 대한민국 자체이지, 태극기는 아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문양을 인쇄해 놓은 종이나 천 재질의 깃발에 불과할 뿐이다. 지켜야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일텐데, 태극기라는 하나의 물건에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형법[3]에서도 태극기를 손상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삼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는 경우에만 범죄가 성립한다. 태극기를 태운 저 사람은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경찰을 향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 대한민국 정부나 대한민국 경찰이 대한민국은 아니다. 대체 누가 대한민국을 모욕했고, 모욕하고 있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의 종교와 이론 수용자세에 대하여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주의와 도덕은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라고 이야기하였다. 요즘의 상황을 보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위한 태극기'가 아니라 '태극기를 위한 대한민국'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저들은 태극기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이런 정부, 이런 공권력은 인정할 수 없다고, 달을 좀 바라보라고 태극기를 태웠더니, 다들 달은 처다보지 않고, 타버린 태극기만, 손가락만 붙잡고 설왕설래한다. 과연 우리는 손가락이라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반성이 필요하다.[4]
- [1] 보수단체, 세월호집회서 태극기 불태운 20대 고발 (뉴스1, http://news1.kr/articles/?2197496)
- [2] 그날 태극기는 왜, 어떻게 불탔는가 – 인터뷰 (슬로우뉴스, http://slownews.kr/39897)
- [3] 형법 제105조(국기, 국장의 모독)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4]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킨다면 다른 사람은 당연히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을 보고 달 자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달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보지 못한 것이다. (능엄경 楞嚴經, 如人以手指月示人, 彼人因指, 當應看月, 若復觀指, 以爲月體, 此人豈唯亡失月輪, 亦亡其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