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친일/친미 세력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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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와~~ / 2010-7-1 00:47)


정치 세력은 외세를 배격한 수구파와 외세를 받아들인 개혁파로 분류된다. 구한말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대원군은 수구파를 대표하고 민비는 개혁파를 대표한 세력이다. 개혁파는 친일 친미 친러 친중파로 나뉘어지고 청일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등에 업은 친일파가 득세한다.

친일파는 일제 강점기하에서 뿐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는다. 해방 직후 남한에는 공산주의 자유 민주주의 친미 친일 민족주의의 5대 정치 세력이 존재했다.

미국의 어용정권인 이승만 정권은 대표적인 친미파로 친일파와 손을 잡고  연립 정부를 구성한다. 친미파와 친일파가 연합된 이승만 정부의 새로운 정치 이념은 반공이었다.

친일파는 이승만의 울타리 안에 숨어 독립 운동가들을 반공 이데올로기로 묶어 숙청한다. 친일파에게 눈에 가시같은 존재인 독립 운동의 대부요 민족주의자 김구는  좌파(빨갱이)로 몰려 암살을 당한다.

만일  백범 김구가 정권을 잡으면 가장 먼저 친일파를 청산할 것이 분명하기에 친일파는 김구를 제거하는 데 목숨을 건다. 이승만이 비록 친일파는 아니지만 정권을 유지하는 데 김구는 가장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김구는 친일파와 이승만의 공동의 적이 되고 암살로 생을 마감하므로 민족주의는 남한에서 명맥이 끊기게 된다.

이승만 정권은 무지몽매한 국민에게 대한민국의 국시가 반일이 아닌 반공이라고 계도하고, 주적이 한반도를 36년간 식민지배한 일본이 아니라 같은 동포인 북한이라고 세뇌시킨다. 세뇌된 국민은 친일보다 더 악질적인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가 되었다.

친미파와 친일파의 연립정부의 공통 이념은 반공으로 이승만 정권은 그들 스스로를 우파라 부르고 ,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공산주의든 민족주의든 상관없이 좌파=빨갱이로 몰아 부친다.

해방 이후 한국의 좌파와 우파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그 후 스스로 우파라 불리던 이승만 정권은 4.19 혁명에 의해 타도되고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친일 청산이 이루어진다. 장면 내각의 친일파 청산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데, 군대도 예외가 아니다.

당시 군대 내부의 친일파의 거두 박정희는 장면 내각에 의해 친일파로 숙청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이승만 정권하에서 친일파는 보호를 받았으나 이제 친일파를 보호할 정치 세력은 없다.

첩보에 의하면 장면 내각은 친일파의 거두 박정희를 숙청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이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박정희는 생존을 건 모험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박정희의 선택은 군사 반란이었다. 당시 미군은 친미 정권인 이승만 정권이 타도된 후 미국에 비협조적인 장면 내각에 대해 내심 불만을 갖고 있었다.미 중앙 정보부는 박정희가 군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당시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미 8군 사령관은 박정희가 군사 반란을 일으킬 경우 무력으로 제압할 만반의 계획을 세워놓고 군대가 한강 다리를 넘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백악관으로부터 박정희를 제압하지 말라는 통지를 받는다. 미국은 한국에 민족주의 정권이 집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친일파의 생존을 건 군사 반란이 백악관의 묵인하에 성공하게 되고 친미+친일 정부인 박정희 정권이 집권하게 된다.

김구가 집권하지 못하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는 장면 내각이 붕괴되므로 다시 청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친일파는 박정희 이후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작금의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

친미+친일 정권은 그들 스스로를 보수 혹은 우파라고 부르며, 그들에 반대하는 세력은 공산주의든 민족주의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까지 좌파=빨갱이로 몰아 부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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